명경지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 그 첫번째 이야기

조현우 karma 2010. 8. 12. 00:49

놀란 감독의 작품을 볼 때마다 항상 놀란다. 그리고 항상 논란이 있다.

 

이번 영화 인셉션 또한 영화 그 자체보다는 해석과 추론이 더 재미를 준다.

 

무의식과 꿈...인간이 꿈을 꾸는 이유는 무의식세계 또는 잠재의식 세계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은 감각기관을 통해 의도하지 않지만 하루에도 엄청난 양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 정보는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데 이 정보들을 처리하는 과정이 잠을 자는 동안 진행된다고 한다.

 

잠을 자는 동안 정보의 처리 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스트레스 역시 해소하려고 한다. 그게 바로 꿈을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꿈과 현실이 비슷한 이유도 현실세계에서 받아들인 정보와 쌓아온 기억에 의해서 구성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세계의 기본적인 형태와 룰은 현실세계와 동일하다.

 

그 룰을 깨는 꿈을 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조금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상황이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물리법칙이 달라진다거나 물질의 성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자각몽이라고 해서 본인이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만약 그 사람의 멘탈레벨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다면 그는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의 속성이나 그 세계에 적용되는 룰(물리법칙 등과 같은)을 변형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나 그게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두에게 불가능한 일도 아닌 것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는 아마도 인간이 잠을 자면서 꾸는 꿈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서 출발한다.

 

본인의 꿈에 본인이 장난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다른 사람의 꿈에 들어가 장난을 치는게 의미가 있는 것이다. ㅎ

 

이 영화에서는 타겟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추출한다'던가 타겟의 무의식 속에 하나의 관념을 '심어놓는' 일 등을 하는 것으로 국한시켜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꿈 세계를 설계하는(여기서 디자이너라고 하지 않고 아키텍쳐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꿈 세계의 '형태를 구성'하는게 주된 일이라서 그런 것 같다) 사람이 있고 그 꿈 속에서 타겟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추출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과정에서 타겟을 속이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꿈을 꾸도록 잠을 재우고 뇌활동을 활성화시키는 약물을 개발하는 사람도 있다.

 

영화의 시작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발한 독창성, 바로 다층적 구조로서 '꿈 속의 꿈'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이 영화가 놀란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다.

 

내가 감독이었으면 다층적 구조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꿈 속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럴 경우 판타지 영화가 되어 버렸을테지만 ㅎ

 

하지만 놀란 감독은 영화에 있어서 구성이 주는 재미를 그 무엇보다도 선호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오류를 발생시키면서도 굳이 <다층적 꿈>이라는 소재로 이야기를 해나가기로 했나보다.

 

일단 여러 사람이 동시에 동일한 꿈을 꾼다는 설정을 과학적으로 접근해보자.

 

특정한 상황에 대해 꿈을 꾸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이 무슨 꿈을 꾸는지 알 수 있을까? 절대 모른다.

 

그럼 영화에서처럼 아주 쉽게 그 사람의 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한가지 가능성은 있다.

 

꿈의 배경을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제공해 줄 때 그 '꿈 세계'의 주파수 영역으로 내 뇌파의 주파수를 공진시킬 경우 동일한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과연 따라 들어온 사람이 그 꿈 속에서 그 사람의 무의식과 상호작용 할 수 있는가 이다. 이것 역시 상당히 난해한 과제이다.

 

상호작용할 경우 그건 더이상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라고 불러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진짜로 무의식끼리 소통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무의식은 자신의 실제 감각기관이 아니라 <꿈 속에서의 나>의 감각기관을 통해

 

꿈을 제공한 무의식 세계 속에서 또다른 새로운 정보를 얻게 된다는 것인데...

 

물론 감각기관으로 받아들인 정보가 뇌파신호로 재구성되기 때문에 굳이 실제 감각기관으로만 정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무의식의 정보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고 그것이 가능하도록 상황을 제공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므로 아주 먼 미래의 얘기라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상당히 관대하게 이 영화의 기본적인 설정에 동의하고 들어가야 한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꿈을 꿀 수 있고 서로 상호작용 할 수 있다는 것....이것은 따지지 말고 받아들여야 영화를 관람할 수 있게 된다.

 

자 그럼 다시 영화 도입부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 코브는 <꿈 속의 꿈>에서 금고 속 정보를 캐내는데 성공하지만 반쪽짜리 성공이었고 그게 사실은 사이토의 테스트였다는게 밝혀진다.

 

그리고 합격점을 받은 코브는 누군가의 마음(무의식)속에 하나의 관념을 심는 '인셉션'을 제안받는다.

 

조건은 아내를 죽인 누명을 벗는 것.

 

그리고 꿈 설계자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만난 여학생. 그녀는 꿈 속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행동들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 놀란 감독의 실수가 시작된다.

 

이 여학생은 꿈 속 세상을 마음껏 변형하는데 펼쳐져있는 세상을 종이접듯이 접는 장면이 나온다.

 

실로 놀라운 생각이고 놀라운 장면이었다.

 

매트릭스와는 또다른 재미를 느끼게 만드는 요소...꿈 속 세상을 조종한다...

 

하지만 이게 가능하다면 영화 전체에 걸쳐서 꿈 속에서 열심히 목숨걸고 싸우는 모든 행위가 부정된다.

 

영화감독의 한계라고 보아진다.

 

흥미를 위해서 권총대신 바주카포를 등장시키거나 계단을 끊어버리는 정도로만 사용했는데 이정도로 사용할 바엔 차라리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모든 사람이 꿈 속 세상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영화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자신이 설계한 꿈 속에서만 어느 정도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제한시키는게 가장 합리적일 거 같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하는 고생이 말이 되기 때문이다. ㅎ

 

하지만 영화에서는 여학생이 꿈 속 세상을 변형시키는 것에 대해서 무의식이 저항한다는 정도로만 얘기했을뿐 가능하다는 식으로 보여줘버렸다.

 

꿈 속 세상의 변형이나 개입, 조작의 정도가 심해질 수록 무의식의 저항도 심해져 결국에는 무의식 세계의 사람들이나 행동가능한 주체들이 그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게 된다는 룰이 있으므로 문제 될거 없지 않느냐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큰 오류는 아니다. 하지만 죽을때 죽더라도 변형할 수 있다면 영화가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차라리 그 장면을 뺐을 것이다.

 

꿈 속은 또다른 현실일 뿐이지 그 현실을 마음대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는 보지 않는게 맞다.

 

그래야 한다. 놀란 감독이

 

꿈 속 세상은 <판타지 세계>가 아니고 <또다른 현실>이다 라고 생각했었다면 말이다.

 

영화 전체에 걸쳐 여학생이 꿈 세계를 변형시키는 장면과 아서가 계단을 끊는 장면을 빼더라도 극 진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불필요하게 흥미요소를 삽입한 경우로서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고 보아진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