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ental Fantasy

이훈영 작가의 [광해경]을 과학적으로 읽기 (4)

조현우 karma 2021. 5. 4. 19:42

광해(光解)의 시작은 참으로 간명하도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광의 완급 안에 결정 난다 수차례 이른 바, 광의 속도보다 빠른 것이 있다면 그 끝에 무엇이 있을까를 참오하게 된 것이 바로 광해의 출발이니라.

연자가보고 있는 모든 것들은 안력이 파악하는 범주, 즉 광의 속도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그것이 바로 범인의 한계인 바, 하나 그 한계를 뛰어넘는 빠름으로 역행한다면 그곳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것이 본좌의 오랜 고민이었다.

보이는 것이 광을 통한 현재의 투상이라 한다면 그 역행 안에 과거가 있음이 아니겠는가.

시공이라 하는 모든 것들이 광의 한계 안에 존재하니 능광선법의 완성이야말로 그 시공을 넘는 단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모두 과장되다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천지 안래 범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인이 있고 천인이 있으니, 그들은 능히 만물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들이다.

본좌 또한 능광을 통하여 그 벽을 넘지 못할 이유가 없으나 다만 한가지 고민이 더하여졌다.

천지간에 정하여진 법도를 넘는다는 것은 이미 한계를 벗어났다는 뜻.

등선이나 탈각의 때에 육체라는 껍데기가 소멸되듯, 능광선법 역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함에 본신의 소멸로 이어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좌의 고민은 나날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견고한 벽 넘어 마지막 경지를 이루어 소멸의 때를 맞을 것인가, 아니면 그 앞에 주저앉을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였다.

하나 본좌가 누구인가?

바로 고금제일이라 칭송받아 마땅한 천재가 아니겠는가?

이모든 소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발견하였으니 그것을 무량이라 칭한 것이다.

무량만이 유동의 삼법에 자유롭고 완급의 법을 초월하니 광안 광령을 넘어 무량을 이루면 그 벽을 넘고도 온전한 육신을 유지할 수 있으니 이 무량을 이루지 못한 채 광해의 끝을 보게 된다면 자칫 육신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무량에 도달하여야만 광해로 고금제일이라 칭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