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ental Fantasy

이훈영 작가의 [광해경]을 과학적으로 읽기 (2)

조현우 karma 2021. 5. 4. 19:40

모든 기(氣)와 신(身)의 변화는 세가지 법 안에 있으니 본좌는 이를 유동(流動)의 삼법(三法)이라 이름 붙였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 땅이 둥글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대저 구체로 이루어진 지면 위에서 만물이 낙하하지 않고 유지되는 이유는, 만물이 서로를 잡아끄는 힘에서 기인한다. 이를 인력(引力)의 법이라 이름 붙였다.

 

유동의 삼법이란 이 인력의 법을 이해치 못하고 깨우칠 수 없다.

 

여기서 유동의 삼법은 뉴턴의 법칙을 의미한다고 보여진다. 우연인지 몰라도 발음이 비슷하여 약간의 작가님의 언어유희적 센스가 느껴진다.

 

뉴턴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 만유인력(중력)을 이해해야 한다는건 과학적으로 맞는 설명은 아니다.

 

뉴턴의 중력법칙은 "(질량을 가진) 만물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주고받는다"인데

 

이 법칙과 뉴턴의 세가지 법칙은 사실 별개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천광류라 함은 말 그대로 빛의 흐름을 뜻하는 것, 이를 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광안이니라.

 

여기서 작가님이 직접 천광류의 의미를 짚고 가주셨다.

 

 

유동의 삼법 중 그 첫번째는 순행(順行)의 법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물체도 이 순행의 진리를 벗어날 수 없는 바, 나아가던 것은 그대로 나아갈 것이며 멈춰있는 것은 영원히 멈춰 있게 되는 것이 진리이다.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만물은 언제나 이 순행의 법에 따라 정(靜)과 동(動)이 정해져 있으니 인간이라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순행의 법에 따르면 사람이 허공으로 뛰어오르면 끝없이 하늘로 솟구쳐야 하며 날아가는 화살은 영원히 날아가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대지 위의 모든 것들은 인력 위에 놓여 있으니, 사람이 날고자 하는 것이 되지 않는 것이나 평행으로 나는 화살이 바닥으로 꽂히는 것은 모두 이 인력의 작용 때문이다.

 

뉴턴 제1법칙으로 교과서에 소개되는 관성(慣性)에 관한 이야기이다.

 

외력이 0일 경우 물체의 가속도는 0이라는 것이다. 즉 멈춰있는 물체는 계속 멈춰있고 운동하는 물체는 같은 속도(같은 빠르기와 같은 방향)로 계속 운동한다는 것이다.

 

 

만물 유동의 두번째 법은 반배의 법이다.

 

순행의 법에 따라 운행하는 만물에게 통용되는 이 반배의 법은 능광선법을 익히는 가장 기초가 되는 깨우침이다.

 

만물이 유동하여 움직이는 것은 모두 가해지는 힘의 크기가 커질수록 증가하며, 움직이는 물체의 무게가 작아질수록 반하여 드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무게가 아니라 질량이라고 해야 옳다.

 

무거운 물건은 움직임에 힘이 더 필요하며, 가벼운 이가 무거운 이보다 빠른 것은 모두 이 반배의 법에 따른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대저 보법과 신법 경공의 모든 이치가 이 반배의 법 안에 적용된다.

 

경신공부라 함은 말 그대로 몸을 가볍게 하는 공부, 가벼워지면 가벼워질수록 빨라지는 것이 바로 이 반배의 법이며 종국에 가벼워짐이 끝에 도달하여 그 무게조차 없어지는 상태가 바로 무량(無量)이라고 부르는 지고한 깨달음이다.

 

불가에선 해탈이라 하고 도가에선 탈선이라고 하고 무가에서는 무극지경이라 불리는 경지를 말한다.

 

무량이란 무게가 없는 상태, 이를 견디기 위해 광안을 얻고 광령을 깨우쳐야만 영과 육이 분리되어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뉴턴 제2법칙에 대한 얘기로 질량과 가속도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같은 힘을 받을 경우 질량이 작을수록 가속도가 크다는 것이다.

 

작가님이 이 법칙을 반배 즉 반비례라고 이름 지은 이유는 아마도 물체의 가속도가 질량에 반비례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량이란 무게가 없어지는 상태라고 말하고 있는데 물리학에서 말하는 무중량상태 즉 중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질량이 0인 상태를 말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중력을 상쇄시키는 또다른 힘의 작용이 있다기 보다는 중력 그 자체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이러한 개념이 불가나 도가에서 말하는 해탈이나 탈각의 상태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쉽게 설명할 수는 없다.

 

질량을 가지고 있는 물체는 절대 광속으로 운동할 수 없다. 그것이 질량을 가진 물체의 한계이다.

 

광속으로 운동하려면 광(光)이 되어야 한다. 즉, 전자기파만이 광속으로 운동할 수 있다.

 

전자기파가 입자가 되고 입자가 전자기파가 되는 것은 이미 현대물리학에서 쌍생성과 쌍소멸로 이야기 되고 있다.

 

이러한 양자역학적인 세계에서의 현상을 인간의 정신세계에 적용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이야기이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개념이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에 닿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오묘하다.

 

유동의 삼법 중 그 마지막은 가용(加用)과 반용(反用)의 법이다.

 

뉴턴 제3법칙인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말하고 있다.

 

이는 만물에 가해지는 힘에는 반드시 그만큼에 상응하는 반탄지기가 일어남을 이른다.

 

반탄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물리학에서는 반작용력이라고 한다.

 

맨주먹으로 바위를 격하매 주먹이 으스러질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가한 힘만큼의 반탄지가 주먹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반탄지기의 오타로 보여지며 반탄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남을 해하려는 자 그 해가 스스로에게 되돌아오는 천리도 이 가용과 반용의 법 안에 있는 것이다.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과학의 범주에서 더 확장하여 설명하는 멋진 장면이다.

 

주고 받음이 매한가지라는 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사는 중요한 이치이자 방법을 작가님도 알고 계신거 같다. ㅎ

 

이 가용과 반용의 법을 무공에 응용한 것이 바로 사량발천근의 수법과 이화접목이라 할 수 있으니, 그것들은 반용의 힘을 흘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보통 태극권의 원리로 많이들 알고 있는 타인의 힘을 흘리거나 되돌려보내는 원리가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관련있다는 설명이다. 사실 내 생각으로는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크게 연관이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힘을 흘리거나 되돌려보내는 건 전적으로 그 힘의 작용점과 흐름을 파악한 상태에서 그 힘의 방향을 바꾸는 기술이지 그것이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근거한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그 어떤 힘이라도 상대에게 고스란히 되돌릴 수 있는 호신공 탄공막을 창안하였다.

 

궁금함이 일어나는 대목이다. 작용반작용의 법칙과 관련이 없지만 사량발천근이나 이화접목의 연장선 상에서 상대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는 기술인 탄공막은 어떤 원리일까?

 

아마도 막 안으로 들어온 힘을 유턴시켜버리는 기술 정도로 추측된다.